꿈꾸던 어른이 되었나요? 내가 필요했던 어른을 기준으로 찾아봤다
꿈꾸던 모습과 지금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실패라고 답하고 싶지는 않았다. 내가 필요했던 어른은 어떤 사람이었는지부터 찾아봤다.
찾아본 계기: 무엇을 기준으로 답해야 할까
“꿈꾸던 어른이 되었나요?”라는 질문이 궁금했다. 어린 시절 상상한 직업이나 생활을 이루었는지 묻는 말일 수도 있고, 바라던 태도로 살아가는지 묻는 말일 수도 있다. 나는 이번에 두 번째 뜻을 붙잡고 자료를 찾아봤다.
내가 내린 답은 이렇다. 꿈꾸던 어른이 되었는지는 과거의 계획과 현재 모습을 대조하는 것만으로 판단하고 싶지 않다. 내가 필요했던 어른처럼 누군가를 대하고 있는지도 살펴보려 한다. 이것은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판정 기준이 아니라, 찾아본 글에서 가져온 나의 성찰 기준이다.
책 전체를 읽은 감상은 아니다. 사계절출판사가 공개한 김소영 작가의 『어떤 어른』 소개와 작가 인터뷰를 확인한 기록이다.
핵심 정리: 꿈꾸던 모습에서 필요했던 태도로
사계절의 작가 인터뷰에서 김소영은 “나한테 필요했던 어른이 되는 것”을 이야기한다. 좋은 어른을 생각하는 출발점을 이미 갖춘 조건이 아니라, 자신이 필요로 했던 관계에서 찾게 하는 말이었다.
다만 이것을 ‘내가 어릴 때 원했으니 지금 어린이도 원할 것’이라는 뜻으로 받아들이면 곤란하다. 공식 도서 소개에 실린 책 발췌에는 “어린이를 이해하려면 눈앞의 어린이를 보아야 한다”는 문장이 있다. 소개글 역시 하나의 이상형보다 다양한 어른의 필요성을 설명한다.
두 자료를 함께 읽고 나니 구분할 것이 생겼다. 내 어린 시절은 질문을 시작하는 단서이지, 다른 사람의 마음을 대신 설명하는 정답은 아니다. 이 구분을 놓치지 않도록 나만의 점검표를 만들었다. 아래 질문은 공식 평가표가 아니라 출처의 관점을 적용한 것이다.
| 돌아볼 장면 | 나에게 던질 질문 | 가져온 근거 |
|---|---|---|
| 어린 시절의 아쉬움이 떠오를 때 | 그때 필요했던 태도를 지금 내 행동으로 옮기고 있는가? | 인터뷰의 ‘나한테 필요했던 어른’ |
| 어린이의 뜻을 짐작하고 있을 때 | 내 기억으로 결론 내리기 전에 당사자에게 물었는가? | 도서 발췌의 ‘눈앞의 어린이’, 인터뷰의 직접 묻기 |
| 어린이에게 선택을 맡길 때 | 의사를 듣는 것과 어른의 결정 책임을 넘기는 것을 구분했는가? | 인터뷰의 선택·설명·결정 책임에 관한 답변 |
가상으로 적용해 보니: 대신 정해주지 않는 것만으로 충분할까
다음은 실제 경험이 아닌 가정이다. 어린 시절 자신의 의견을 묻지 않는 어른이 아쉬웠던 사람이, 조카와 함께 할 활동을 정한다고 해보자. 이 사람은 ‘나는 원하는 것을 하게 해주는 어른이 되겠다’고 생각한다.
그 마음만으로 조카의 바람을 알 수는 없다. 작가는 인터뷰에서 어린이의 바람을 모르겠으면 직접 묻고, 선택지를 지나치게 좁히지 않으며, 이유를 설명하되 필요한 결정의 책임은 어른이 져야 한다는 취지로 답한다.
이 관점을 적용하면 판단이 달라진다. ‘내가 못 해본 활동을 골라준다’는 선택은 조카의 의사가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멈춰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렇다고 ‘네가 전부 알아서 정해’라고 말하는 것이 곧 존중은 아니다. 의견을 듣는 일과 결정의 책임을 지는 일이 함께 남기 때문이다.
이 예시에서 점검할 것은 조카가 반드시 만족했는지가 아니다. 그런 결과는 가정하지 않았다. 내 아쉬움을 채우려 한 것인지, 지금 상대의 뜻을 확인하려 한 것인지가 판단을 가르는 지점이다.
더 궁금해서 찾아본 내용: 좋은 어른도 기대어도 될까
다정한 어른을 떠올리다 보니, 언제나 혼자 감당해야 하는 사람을 상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궁금해졌다.
같은 작가 인터뷰에는 조언을 구하고 자신의 처지를 솔직히 인정할 수 있게 해주는 사람에 관한 이야기도 나온다. 동시에 작가는 미성년자와 옛 제자에게 자신의 고민 상담을 맡기지 않는 선을 지킨다고 말한다. 이는 작가 자신의 태도이지 모든 관계를 판정하는 규칙은 아니다.
나는 여기서 도움을 받는 일과 누구에게 어떤 부담을 맡기는지를 구분해 보게 됐다. 완벽하게 자립한 모습만을 어른의 기준으로 삼기보다, 기대는 관계에서도 상대의 자리를 생각하는지를 묻고 싶다.
그래서 처음 질문에 ‘되었다’ 혹은 ‘되지 못했다’로 서둘러 답하지 않기로 했다. 대신 조금 구체적으로 묻는다. 내가 바라던 어른의 태도 중 지금 실천하고 있는 것은 무엇이고, 내 바람과 상대의 바람을 혼동하고 있는 부분은 무엇인가. 찾아본 자료가 대신 답해줄 수는 없지만, 적어도 무엇을 돌아볼지는 전보다 분명해졌다.